계룡산 등산. 갑사, 삼불봉과 남매탑 가을 풍경

2021.10.31 - 계룡산 등산(갑사-금잔디고개-삼불봉-남매탑-동학사)

 

오늘은 친구와 둘이 계룡산 등산을 다녀왔네요.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를 지나 삼불봉을 거쳐 다시 남매탑 그리고 동학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걸었습니다.

혼등할때는 몰랐는데 함께 하니 역시 힘든건 반이되고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주차장에서 갑사 입구를 지나는데 눈에 띈 괴목. 괴목대신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갑사 괴목대신제의 유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 입구 황매화가 화려하게 피어나는 갑사동 용천교 입구에는 수령이 1600여 년이 넘은 괴목이 있었는데 갑사의 창건과 거의 역사를 같이 한 이 괴목은 임진왜란 때에는 최초의 승병장이었던 영규대사와 많은 승병들이 모여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왜군을 퇴치할 작전을 세우기도 했던 호국불교를 증거하는 신수(神樹)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300여 년 전 갑사 입구 마을에 알 수 없는 역병이 도는 가운데 갑사 장명등(묘나 사찰의 주위를 밝히기 위해 켜는 등)의 기름이 없어지기 시작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들이 장명등의 기름이 없어지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밤에 장명등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며칠 밤을 새우며 지키던 어느 날 몸집이 커다란 누군가가 기름을 꺼내어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스님들이 뒤를 쫓아가니 갑사 입구의 괴목으로 가는데 알고 보니 괴목의 '당산' 신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스님들이 기름을 가져 간 연유를 묻자 '당산' 신은 오가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담배를 피우고는 담뱃불을 나무의 뿌리에 비벼서 끄거나 재를 털어내는 탓에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렇게 생긴 상처가 갈수록 심해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갑사에 있는 장명등의 기름을 가져가 바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갑사 장명등의 기름이 사라지는 이유를 알게 된 스님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괴목의 주위를 잘 정리하고 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했으며 갑사를 찾는 신도들에게도 주의를 주었으며 나무 아래 기름을 두어 굳이 절까지 오지 않고도 상처를 치료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갑사의 장명등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으며, 마을에 돌았던 역병도 사라져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는데 그동안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스님과 마을 주민들은 괴목의 '당산' 신에게 처음 장명등 기름이 사라진 날인 매년 정월 초사흗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매년 정월 초사흗날 괴목대신제를 지내오던 갑사 입구 상가 번영회에서는 4월에 치러지는 갑사 황매화 축제를 시작하면서 갑사괴목대신제와 함께하던 마을 잔치를 없애고 간략하게 정월 초사흗날 괴목대신제는 지내고 4월 갑사 황매화 축제 기간에 다시 한번 더 제를 모시게 되었는데 그 괴목대신제가 지난 4월 7일(토) 오전 10시 황매화 축제와 함께 거행된 것이다.

 

조금 걷다보니 갑사 매표소 도착

 

매표소를 지나 갑사로 가는 길을 걷다보니 아직은 이른듯 푸르지만 울긋 불긋 단풍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갑사 내부의 모습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용문폭포 : 이무기가 이곳을 뛰어오르면 용이 되는 문이라 하여 용문폭포(龍門瀑布)라 합니다. 연천봉 북서쪽 골짜기의 물이 합해져서 미륵불 위쪽 골짜기에서 폭포를 이루는 이 용문폭포는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에 기우제나 산신제 등의 무속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이라 합니다. ​

 

금잔디고개 까지 1.7km

 

금잔디고개 까지 1.0km

 

시작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돌계단...

숨이 턱까지 올라오면 잠시 쉬면서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올라가는 도중 가끔 볼 수 있는 단풍들...

 

드디어 금잔디 고개 도착

 

잠시 숨을 돌린 후, 관음봉은 스킵하고, 삼불봉까지만 갔다오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삼불봉

 

이제 남매탑으로 내려 갑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단풍이 짙어지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매탑 도착.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284호)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은 청량사 터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불탑이다. 정밀조사를 한 결과 이 탑은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 되었으나 건축 양식은 목조 건축과 같이 여러 매의 석재를 이용하여 탑을 만드는 백제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는 9세기 이후 이 지역에 불교가 자리 잡을 때 백제의 옛 땅이자 후백제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공주의 문화적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량사 터에는 이 탑과 칠층석탑이 남아 있는데 두 탑을 일컬어 '남매탑' 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문인 오재정의 '유계룡산록'에서 남매탑이 각각 칠층, 구층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두 탑의 최초 모습이 현재와 달랐음을 말해 준다. 1961년 칠층석탑을 고쳐 짓는 과정에서 오층 석탑도 일부 변형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 (보물 제1285호)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은 청량사 터에 남아 있는 두 개의 탑 중 하나이다. 이 탑은 신라계 양식이 섞여 있고,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타나는 백제계 양식도 보인다. 나란히 있는 오층 석탑은 백제계 양식을 따랐다.
청량사지 남매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가 멸망할 무렵 당나라 승려 상원 대사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 주자. 호랑이가 상원 대사 앞에 여자 한명을 물어다 두고 가 버린다. 상원 대사는 호랑이에게 화를 입은 여자를 구해 주고 불법으로 그녀를 감화하여 남매의 연을 맺고 불도에 함께 힘쓰게 된다. 이후 이들이 세상을 떠나자 이들을 기리는 사리탑인 남매탑이 세워졌다. 조선 후기 문인 오재정의 '유계룡산록'에는 본래 이곳에 두 개의 석탑이 있었으며, 그 중 칠층석탑은 전설 속의 스님을, 구층석탑은 전솔 속의 여자를 상징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제 동학사 까지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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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골삼거리

 

역시 산 아래쪽에는 울긋불긋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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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주차장에서 본 계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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