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발표 몇 시간 뒤 ICC 제재… 트럼프, 이번엔 '국제 법치'에 칼을 겨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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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9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남아공 출신 인권법률가 나비 필라이(85)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뒤... 미국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가 국제형사재판소(ICC) 자체를 겨냥한 고강도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ICC 재판관과 검사 10여 명을 개인적으로 제재해 왔는데요. 이번에는 아예 재판소라는 기관 전체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미국 관할권 안에 있는 ICC 자산은 동결되고, ICC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과 개인은 6개월(180일) 안에 거래를 정리해야 합니다.

 

루비오 장관의 발언은 더 충격적입니다. "ICC가 위협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가 ICC를 끝내겠다", 필요하면 "벽돌 한 장 한 장" 해체하겠다고... 게다가 미군 주둔에 기대고 있는 동맹국들더러 재판소를 길들이라고 압박까지 했습니다.

 

이게 과연 '자유세계의 리더'를 자처하는 나라의 외교장관 입에서 나올 말인가요?

 

 

나비 필라이는 어떤 인물인가?

 

필라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 인권을 변호했던 변호사 출신입니다.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소장, ICC 상소심 재판관(2003~2008),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거쳤고, 지금은 로힝야 집단학살 사건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을 맡고 있습니다. 평생을 전쟁범죄와 집단학살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는 일에 바친 분이죠.

 

2025년에는 유엔 독립조사위원회를 이끌며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요.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노벨위원회는 그런 그에게 "평화와 국제법 증진"의 공로로 상을 안겼습니다.

 

 

트럼프의 반응…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도 "8개의 전쟁을 끝냈다"며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상자 발표 직후 트루스소셜에 필라이와 노벨위원회를 비난하는 글을 공유했고, 외신에 따르면 이번 선정을 "수치스럽다", "노르웨이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이라고까지 했습니다.

 

85세의 인권 법률가가 평생의 공로로 상을 받은 날, 축하는커녕 비난을 퍼붓고, 같은 날 그가 몸담았던 재판소에 제재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미 행정부는 제재가 이전부터 준비된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하지만 하필 그날, 하필 몇 시간 뒤라는 타이밍... 필라이 수상에 대한 불만이 방아쇠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설령 우연이라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국제사회가 "국제법과 정의"에 박수를 보내는 날, 미국은 그 정의를 집행하는 기관을 부수겠다고 선언한 셈이니까요.

 

 

이중잣대의 끝판왕

 

더 씁쓸한 장면도 있습니다. 루비오 장관은 불과 이틀 전,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앞에서 법치와 국제질서를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바로 그 법치를 지키는 재판소를 "가짜 재판소", "불량 재판소"라고 부르며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ICC는 2002년 집단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수단, 우간다, 콩고,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다룰 땐 괜찮고,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대상이 되면 "불법"이라는 논리... 이것이야말로 "법은 약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선언 아닐까요?

 

이번 제재를 가장 반긴 사람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였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은 당사자가 박수를 치는 제재, 그게 무엇을 위한 제재인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동맹국들도 등을 돌렸다

 

이번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조차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덴마크·캐나다·일본 8개국 외교장관은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의 제재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번 제재가 일본의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현 ICC 소장인 아카네 도모코가 일본인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죠.

- EU 집행위원회는 ICC에 대한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고,

- ICC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의 롭 예턴 총리는 "ICC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습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미국 제재를 무력화하는 EU '차단 규정' 발동까지 요청했습니다.

-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형사정의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라고 우려했습니다.

 

ICC는 성명에서 이번 조치를 "법치와 국제법 질서의 근간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고, 필라이 본인도 이번 제재는 "전례 없는 일"이며 "용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미국 정부의 논리는?

 

공정하게 보자면 미국 측 주장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미국과 이스라엘은 ICC 설립 조약(로마규정) 가입국이 아니므로 자국민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권 논리

- ICC가 정치화되어 민주국가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주장

- 제재가 노벨상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준비된 것이라는 해명

- 즉시 발효가 아니라 180일의 유예를 둬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

 

다만 비가입국 국민이라도 가입국 영토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ICC가 다룰 수 있다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심판받지 않겠다"는 주장이 정당하려면, 적어도 재판관과 그 가족에게까지 제재를 가하는 방식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무리하며...

 

권력자가 자신을 겨눌 수 있는 법정을 부수겠다고 나서는 것. 역사적으로 이런 장면은 늘 독재와 무법의 전조였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못 받아서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였는지는 트럼프 본인만 알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올해 노벨평화상이 누가 진짜 평화와 정의의 편에 서 있는지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줬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은 평생 학살 피해자들의 편에서 싸운 85세 법률가, 다른 한쪽은 상을 못 받았다고 노르웨이를 비난하고 국제재판소를 "벽돌 한 장씩" 부수겠다는 초강대국.

 

시상식이 열리는 12월 10일, 필라이의 수상 연설에서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 그리고 180일의 유예기간 동안 국제사회가 ICC를 지켜낼 수 있을지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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